Approach

You can read about my approach to my work in English here.

접근 방식

번역과 디지털 큐레이션을 관통하는 세 가지 원칙


저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다루는 번역자이자 디지털 큐레이터입니다. 번역자로서는 국가유산 안내판과 박물관 전시 설명문을 영어로 옮기고, 큐레이터로서는 한국의 고전과 문화유산에 관한 지식을 구조화된 데이터로 정리하여 웹에 공개합니다. 석사와 박사 과정에서 인문정보학을 공부했고, 그 기간 동안 문화유산 번역 일도 함께 해 왔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6,000건이 넘는 국가유산 안내판 문안을 다루었고,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인문학연구소의 동료들과 함께 국가유산청의 안내판 지침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번역과 디지털 큐레이션은 서로 다른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에게는 그리 다르지 않은 일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서 저는 세 가지 경계 사이의 번역자로 일합니다. 한국의 문화유산과 세계의 독자 사이, 전문가의 지식과 대중의 이해 사이, 그리고 사람이 만든 의미와 인공지능이 쓸 수 있게 정리된 데이터 사이입니다. 어느 경계에서든 할 일은 같습니다. 한쪽에 있는 것을 다른 쪽이 실제로 쓸 수 있는 형태로 건네는 것입니다. 그 상대가 안내판 앞에 선 외국인 관람객이든, 데이터베이스에 자료를 입력하는 동료 연구자든, 믿을 만한 정보를 찾는 검색 엔진과 인공지능 모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 가지 일을 모두 같은 세 가지 원칙으로 합니다. 접근성, 투명성, 그리고 성실함입니다.


텍스트는 데이터다: 동전의 양면

번역과 디지털 큐레이션이 하나로 만나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제가 일관성에 두는 무게입니다. 같은 유산, 같은 인물, 같은 장소, 같은 용어는 어디에 나오든 같은 영어 이름으로 식별되어야 합니다.

전시장 벽에 인쇄된 설명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관람객은 안내판에서 본 이름을 검색하고 인공지능에 묻습니다. 기관은 같은 텍스트를 누리집에 올리고 데이터베이스에 넣습니다. 같은 유산이 기관마다 다른 영어 이름으로 적혀 있으면, 관람객은 그것이 같은 곳인지 알 수 없고, 검색은 둘을 연결하지 못하며,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인공지능의 답도 그만큼 부정확해집니다. 어떤 용어를 가장 적절하게 옮기는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모든 번역자가 당연히 하는 일이고, 저도 그렇게 묻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번째 물음에도 같은 무게를 둡니다. 이 용어를 옮겨 온 선례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선례와 일관되게 쓰고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모든 맥락에서 모두가 정확히 같은 단어를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서로 경쟁하는 표기의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것입니다. 제가 텍스트를 텍스트로만 보지 않고 데이터로도 보기 때문이며, 컴퓨터에게는 한 글자가 다른 이름이 곧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정부의 표기 기준을 가장 먼저 따릅니다. 한국에는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지명·관광 콘텐츠·안내판 같은 공공 용어의 번역 및 표기 지침, 그리고 지정 국가유산의 영문 명칭 기준이 있습니다. 이 기준들은 잘 만들어져 있고, 모두가 함께 따를 수 있는 하나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정 유산의 명칭에서 박물관 명제표와 홍보물에 이르기까지, 이 기준을 따르지 않은 영문 텍스트를 자주 보아 왔습니다. 기준을 만든 기관이 스스로 그 기준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저는 이것이 누군가의 부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공기관의 담당자는 순환 보직으로 일하고, 번역은 외주로 이루어지며, 국문과 달리 영문에는 감수 단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큰 사업일수록 여러 번역자가 여러 해에 걸쳐 나누어 작업합니다. 그 결과 과정의 어디에도 텍스트를 기준에 비추어 확인할 책임을 진 사람이 없게 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국가유산청의 기준 규칙은 명문이 있는 유물의 이름에 “with Inscription of” 형식을 쓰도록 정하고 있지만, 국가유산청이 2024년에 지정한 ‘천수원’명 청동북은 그 형식을 따르지 않은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등록 전에 새 이름을 기준 규칙과 대조하는 단계가 있었다면 걸렸을 일입니다.

저는 그 단계가 될 수 있습니다. 담당자가 바뀐 뒤에도 기준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 텍스트를 기준에 비추어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지나 이제 인공지능의 시대에 들어와 있는데도, 한국 문화유산의 번역, 나아가 공공 번역 전반은 아직도 아날로그의 관점에서 접근되고 있습니다. 텍스트를 하나씩, 안내판 하나와 명제표 하나를 각각 별개의 일로 다루는 방식입니다. 벽에서만 읽히고 끝나는 텍스트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텍스트가 쓴 이름은 사람들이 자신이 본 것을 어떻게 기억할지, 나중에 무엇을 검색할지, 그리고 그들이 찾아가는 데이터베이스와 인공지능 모델이 무엇을 찾아낼지를 결정합니다. 인쇄물이든 온라인 발행물이든 같은 그림의 일부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고, 일관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접근성: 필요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형태로

지식은 그것을 가진 사람의 편의가 아니라 그것을 받는 사람의 필요를 기준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 원칙이 번역에서 어떤 모습인지는 작업 기준에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요약하면, 누가 읽을지 먼저 묻고, 그 독자가 이미 아는 말로 쓰고, 독자가 실제로 가진 시간 안에 핵심이 닿도록 글을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큐레이션도 같은 관심에서 출발하지만, 그 뒤에는 더 큰 물음이 있습니다. 제가 다루는 것은 인문학의 지식이고, 그 상당수는 공공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 큐레이션은 흔히 보존의 관점에서 이야기되지만, 나머지 절반은 접근입니다. 디지털 자원은 인문학 연구의 성과를 읽는 새로운 길만이 아니라, 그 지식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새로운 길도 열어 줍니다. 저를 디지털 큐레이션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문학의 성과를 새롭고, 흥미롭고, 실제로 쓸모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마다 이 데이터를 누가 만들고 누가 쓸 것인지, 그 사람들이 이 구조를 다룰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고전 시화(詩話)의 다국어 링크드 오픈 데이터 아카이브인 PoetryTalks.org에서는 온톨로지를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설계하고 데이터 입력에 Page Forms를 썼습니다. 그 결과 시맨틱 데이터나 온톨로지를 전혀 모르는 참여자도, 자신이 다루는 것이 인물인지 장소인지 시인지만 알면 양식을 채우는 것만으로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의 복잡함은 구조가 맡고, 사람은 내용에 집중합니다.

박사 논문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한국 문화유산에 관한 영문 사이트의 시안을 만들었습니다.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우리가 일상에서 문화를 만나는 통로, 곧 책과 행사, 답사, 상품과 연결하고, 그 맥락을 한국 문화유산을 외국인에게 소개하려는 누구나 영어로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그 취지였습니다.


투명성: 기준을 공개하고, 만드는 과정을 보이게

제 일에서 투명성은 두 가지를 뜻합니다. 하나는 어떤 기준으로 일하는지, 그리고 누가 그 일을 했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결과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다른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번역에서

제 작업 기준은 공개되어 있습니다. 의뢰 기관은 제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지 미리 볼 수 있고, 작업 중에 의견이 다를 때에는 함께 들여다볼 페이지가 있습니다.

또한 저는 공공 재원으로 이루어지는 번역 사업에서는 누가 번역했는지, 그리고 어느 담당자가 검토를 맡았는지가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텍스트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믿고 참조합니다. 결과물에 이름이 남아야 품질에 책임이 따르고, 검토가 얼마나 꼼꼼히 이루어졌는지도 모두가 볼 수 있습니다. 번역자와 공무원 사이에서 환영받을 입장은 아니겠지만, 저는 이것이 시민과 납세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저부터 그렇게 하고자 합니다.

디지털 큐레이션에서

디지털 큐레이션에서 투명성은 결과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감추지 않는 것입니다. Poetry Talks와 박사 논문의 시안 사이트는 모두 처음부터 새로 만들지 않고 MediaWiki와 Semantic MediaWiki, 그리고 이미 있는 확장 기능 위에 만들었으며, 데이터는 링크드 오픈 데이터의 일반 표준을 따릅니다. 저는 가능한 한 오픈 소스 도구를 쓰고 독점적 요소는 최소한으로 줄입니다. 프로젝트의 필요에 맞추려면 어느 정도의 맞춤 작업은 늘 필요하고, 저도 필요한 곳에는 직접 기능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공개된 도구 위에 놓일수록, 그것을 본떠 만들려는 사람에게 진입 장벽은 낮아집니다. 유료의 벽 뒤에 잠긴 것이 없고, 도구에는 이미 풍부한 자료가 딸려 있으며, 바닥부터 짓지 않고 그 위에 지으면 데이터를 공유하는 기반을 훨씬 쉽게 갖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조가 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제가 만든 것을 가져다 자신의 프로젝트에 맞게 고쳐 쓸 수 있습니다.

MediaWiki를 쓰는 데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모든 페이지에 누가 언제 무엇을 고쳤는지가 남습니다. 지식이 벽 뒤에 숨지 않고, 만들어진 과정이 누구에게나 보입니다. 이것은 디지털 인문학이 처음부터 지켜 온 개방의 정신이며, 제가 따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 접근성과 투명성이 완벽하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제가 일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성실함: 성(誠)에서 화(化)까지

『중용』에 처음 만난 뒤로 늘 마음에 남아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曲能有誠,誠則形,形則著,著則明,明則動,動則變,變則化。唯天下至誠爲能化。

작은 일에서도 성실할 수 있다. 성실하면 드러나고, 드러나면 뚜렷해지고,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바뀌고, 바뀌면 화(化)한다.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실함만이 화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제 마음을 끄는 것은 그것이 누구에게나 이를 수 있는 길이라는 점입니다. 출발점은 성(誠), 곧 자신이 하는 일에 온전히 참되어 뜻과 행위 사이에 거짓이 없는 것이며, 그것은 어떤 크기의 일에서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거기서부터 구절은 하나의 사슬을 그리는데, 그 고리 하나하나는 무언가가 보이게 되는 과정입니다. 성실함은 드러나고, 드러난 것은 뚜렷해지고, 뚜렷한 것은 밝아집니다. 성실한 일은 스스로를 보이고, 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닿아 그들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실함은 처음부터 접근성, 투명성과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그리고 끝은 화(化), 곧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일과 삶에 다가가는 하나의 열린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는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자신의 성실함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결과를 좇는 대신 출발점을 지키고, 좋은 결과, 어쩌면 무언가를 바꾸는 결과가 따라오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제가 일에 담고자 하는 성실함이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것을 옳게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도 실수를 하고, 더 나은 방법을 나중에야 알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다만 한 문장짜리 안내판이든 수천 건의 데이터베이스든 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그 일의 목적, 곧 어떤 독자를 위한 것인지, 어떤 지식을 누구에게 열어 주려는 것인지에 저를 맞춘다는 뜻입니다. 나머지는 이 구절이 말하는 사슬에 맡깁니다. 성실하게 한 일이 쌓이면 어딘가에서 조금은 화(化)가 일어난다고, 그렇게 믿고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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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